Dialogue in the National Histories

  • 김경태 제9회 국사들의 대화 보고문

    제74회 SGRA 포럼/제9회 한국・일본・중국 간 국사들의 대화 가능성 「동아시아의 ‘국사’와 동남아시아」는 2024년 8월 10일 ~ 11일, 태국 왕립쭐라롱껀대학교에서 개최되었다. 2020년 1월 필리핀에서의 대화 이후, 감염병 사태로 한동안 온라인에서 대화가 이루어졌고, 지난해(2023년) 8회가 오랜만에 일본에서 대면으로 개최되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대면으로, 그리고 비교적 먼 곳에서 대화를 이어가게 되었다.   본 회의 전날 저녁 참가자들이 만나 저녁식사를 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참가자 중에는 근 5년 만에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 이들도 있었고, 처음 만나는 이들도 있었지만, 모두 비슷한 고민과 문제의식을 가진 연구자로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날부터 시작될 “대화”를 기대하게 하였다. 전 유엔 사무차장 아카시 야스시(明石康) 선생의 환영사는 자국의 국사와 국사 간의 대화를 고민하는 연구자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8월 10일, 화창한 날씨 속에 회의가 열렸다. 이번 대화는 총 다섯 세션으로 구성되었다. 첫째날은 기조강연과 발표로 두 세션을 진행하고, 다음날 이 내용을 기반으로 한 제3세션의 지정토론, 그리고 제4세션의 자유토론,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국사들의 대화를 고민하는 제5세션이 준비되었다. 첫번째 세션은 류 지에 선생(와세다대)이 진행하였다. 우선 이번 대화의 취지를 설명하였다. 이어서 국사대화를 처음 시작할 때와 국제정세가 크게 변한 현 시점에서 새로운 장소와 주제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며, 이를 기회로 앞으로의 대화도 모색하자고 하였다.   이어서 미타니 히로시 선생(도쿄대)의 개회사가 있었다. 선생은 동북아시아 삼국의 관계에 영향을 준 현대사의 궤적을 서로 이해하고 공유한다면 역사 대화는 언제나 안정적으로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한중일 세 나라의 동남아시아에 대한 연구의 차이점에 대해 국사학자로서의 의문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 대화를 통해 이를 풀어나가면서 –이 새로운 지역에서 이루어진 유대감, 대립에 주목하여– 우리들의 유대감을 어떻게 심화할지 생각해보자고 했다.   양 퀘이송 선생(베이징대, 화동사범대)의 기조강연은 “포스트 콜로니얼 시대의 ‘내셔널리즘’ 충돌의 원인을 둘러싼 고찰-마오쩌둥 시대의 영토 분쟁에 관한 전략 변화를 단서로”라는 주제였다. 요컨대 마오를 비롯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는 자신의 재량으로 외교관계의 갈등을 봉합(혹은 무마)하는 정치력을 발휘했으나, 이후 그와 다른 성향의 지도자들은 그러한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고(혹은 못했고), 때로 포퓰리즘을 중앙에서 활용하기도 했으나, 오히려 반대로 영향을 받는 주객전도 상황이 나타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 상황은 마오를 비롯한 지도자들이 행한 정책의 그림자이기도 하다는 평가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로의 역사를 공감하고 이해하기 위해 역사 연구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제언했다. 요컨대 어떠한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역사 인식’이든지 그 제한성을 가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인류 사회의 역사 과정 속에서 민족과 국가의 역사를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한중일 연구자 및 태국 출신 태국 연구자의 주제발표 세션이었다. 남기정 선생(서울대)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파타짓 탕신만콩 (도쿄대)의 “‘대나무 외교론’에서의 대국관계와 소국의식”은 외교에 능숙한 나라로 알려져 있으며 이를 자부하는 태국 외교의 역사적 사실 관계를 다시 탐구하고, 더불어 그 이면에 숨겨진 '소국의식'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소국(관)’, ‘소중화의식’ 등, 한국사에서 사용되는 용어와 유사하여 친근감을 느꼈으나, 그와는 상당히 다른 맥락에서 사용된 용어였기에 매우 흥미로웠다. 태국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한편으로, 한국의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의 민족”이라는 관념과의 유사성도 떠올리게 되었다.   다음으로 세 나라 연구자의 주제 발표가 이어졌다. 요시다 마스미 선생(미쓰이문고)의 “일본 근대사와 동남아시아-1930년대의 평가를 둘러싸고-”는 전후 일본 근대사 연구에서 일본과 동남아시아 관계가 어떻게 이야기되었는지에 대해 당대의 시대배경과 학계의 조류를 소개해주었다.   윤대영 선생(서울대)의 “한국의 동남아시아사 연구”는 한반도와 동남아시아의 관계를 고대 혜초 시기부터 고려, 조선을 거쳐 근대 한국에 이르기까지 통시대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의 동남아시아사 연구의 다소 아쉬운 현황에 대해 지적해주었다.   가오 옌졔 선생(샤먼대)의 “화교 사무와 외교: 1959년 인도네시아 화인 탄압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은 1959년부터 1961년 사이 인도네시아에서 불거진 중국계 주민에 대한 탄압과 이에 대응한 중국의 외교정책을 논하였는데, 가오 선생은 중국은 강경한 자세로 대응하면서도 양국의 우호 관계발전을 위한 수요에 반응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번 대화에서는 중국 학계 권위자의 기조강연과 태국 출신 연구자의 발표가 포함되었다. 이는 새로운 시도였다. 국사학계의 권위자로부터 중국의 역사 인식 내지 서술의 특징을 들어보는 기회였으며,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태국의 자국사 인식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이렇게 첫날의 두 세션을 마치고 야외에 마련된 식사 장소에서 맛있는 태국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아시아미래회의 환영행사에 이어진 스탠딩 저녁식사 자리에서는 전날에 이어 화기애애한 대화가 이루어졌다. 모두가 그날 일정을 마치고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원격지에서 이루어진 행사의 ‘장점’이었다. 지정토론자들은 기조강연과 발표문을 듣고 생각을 정리하여 작성한 토론문을 이날 밤까지 통역자에게 전달했고, 이는 다음날의 토론을 원활하게 진행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8월 11일, 세번째 세션은 펑하오 선생(오사카 공립대)의 사회로 진행된 지정토론이었다. 한국에서는 정재현 선생(목포대)과 한성민 선생(고려대), 일본에서는 사토 유키 선생(릿쿄대)과 히라야마 노보루 선생(가나가와대), 중국에서는 정제시 선생(원저우대)과 정 정 선생(효고현립대)이 토론자로 나섰다. 토론의 주요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역사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나 교육자로서 현장에서 역사교육을 정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중일관계 변화 원인에 대한 개인적 생각으로, 정치의 영향을 받는 것은 중국만이 아니라는 것, 교육을 통해 역사 인식을 고양해야 한다는 것”, “소국의식, 자국보호의식 – 등에 대한 원리를 이해할 수 있어야. 극복할 수 있을 것” (정정)   “과거 원한을 잊고 좋은 마음으로 소통하자고 한 장제스의 항일전쟁 승리연설” “인도네시아 화인탄압 전, 이미 화인 배척사태가 발발했었음. 필리핀 및 인도네시아의 이전 시대의 사례. 탄압의 패턴이 다르지만 유사한 점도 있다”, “중국의 반응은 문제가 발생한 시점에 국한하지 말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본다면 새로운 평가가 나오지 않을까”, “화교의 입장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지에시)   “한국의 동남아시아 연구는 베트남의 비중이 높은 것이 특징인데, 전근대 관계도 주로 베트남 관계를 소개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음. 그러나 한국 연구자, 자국사가 이루어지는 무대, 혹은 자국민만을 대상, 동남아시아인은 타자화하는 경향”, “일본의 동남아연구가 식민주의적,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 깔린 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임, 전후 일본 학계는 여기서 탈피하기 위해 어떤 노력 기울였는지” (정재현)   “한국의 동남아시아 연구, 교육의 한계 지적. 새롭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음.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한중일을 어떻게 생각하지는 소략한 것은 아쉬움”, “동병상련의 관심이 한국의 베트남 파병에 영향을 주었을 것. 이에 대해 한국의 현대사에서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동남아시아에 있던 B급, C급 전범들에 대한 터부시 경향의 문제”, “인도네시아의 화인 탄압은 내부의 정치적 문제가 아닌지. 수하르토 정권 탈취 이후 공산주의자 탄압과정에서도 화인 탄압 사례가 있었다는 것” (한성민)   “산의 경치는 멀리서 보는 것이 좋다는 입장에서 코멘트”, “근대 이전 동아시아-동남아시아의 교류에서 중국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었고, 중국을 통해 일본은 얼굴을 보지 못하는 이웃인 동남아시아를 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봐야”, “조선왕조의 동남아시아 관심은 중국에 조공하는 이웃나라로서의 관심이었고 중국과 관계가 해체되면서 동남아 관심이 후퇴되는 것, 피식민지 위기에서 새롭게 재편된다는 점이 흥미로웠음”, “소국의식을 외교정책론으로 이야기했는지 문화적 콤플렉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토 유키)   “많은 정보를 미디에서 얻는 현재, 어떻게 정보를 얻고 확산되는가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일본에서는 90년대 우익적 대중서가 등장하는데, 왜 이런 것들이 생겨났을까. 중국과 한국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있는가” “‘소국의식’ = 큰 것과 연결되고 싶다는 의지도 포함된다고 생각”, “일본에서 ‘성지’의 출현 (기독교, 다이쇼 시대 니치렌, 이후 천황가의 관계 장소)은, 작은 일본이 커다란 구미로 연결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 아닌가. 네가티브한 자기인식의 표출 중 하나로서 ‘소국의식’과 연관된다고 생각” (히라야마 노보루)   여섯 분의 지정토론자들은 각자의 전공분야에 입각하여 깊은 고민이 담긴 진솔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해주었다.   네번째 세션은 자유토론이었다. 정순일 선생(고려대)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우선 지정토론자의 질문에 대한 기조강연자와 발표자의 간략한 답변으로 시작하여, 자유로운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제의식이 질문으로, 질문이 발전되고 공감대를 얻는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이어졌다. 질문과 답변이 수시로 교차했음에도 대화는 상당히 자연스럽게 진행되었고, 이는 오랜 기간 함께 해온 통역자분들의 덕이었다. 오랜 기간 함께 대화를 했던 참가자들, 그리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새로운 참가자들이 함께 했기에, 효율적인 토론이 가능했다.   기조강연, 발표, 토론자들의 코멘트 중 인상 깊은 것 위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장제스는 민족주의자로서 (일본 등에 반감), 마오 계급투쟁적 면에서 (외교는 인민의 외교) 양국 관계(사)에 접근했다”, “균형에 또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균형이 반드시 옳은 길은 아닐 수 있었다. 문화적 콤플렉스 때문에 많은 것들에 눈감아도 되는지, 내세워도 되는지 의문”, “완전한 (광역의) 지역적 역사과 각국의 역사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한 고민”, “동남아가 보는 한중일은 어떠했을까. 인도네시아는 가장 마지막에 중국과 수교. 중국에 대해 회의심, 공포감이 있지 않았을까”, “중국에서 동남아시아 연구 활발한 편으로 보이나, 부풀려진 면이 있다. 장기적으로 주목하고 연구하는 학자는 적은 편”, “상호인식의 관점에서 베트남에서 한국인식에 대한 자료를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돌아간 베트남 연구자들 많은데, 이런 연구를 해주는 편이 적절하지 않을까”, “화교, 화인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인가 아닌가는 매우 흥미로운 질문으로 생각. 일본인 이민자의 역사는 일본사인가. 국가사-인류사의 확대라는 면에서 중요한 논점으로 생각”, “(소국의식 등을) 만든 사람은 수단으로 개발한 것인데, 그것이 확산 정착되어 사실처럼 의심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유사하다고 생각. 처음에는 페이크라는 것을 일지만 세대가 넘어가면 종교적이 되기도 한다”, “이민과 역사. 국사학자들 입장에서 (이민자들에게도 의미 있는 역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국사의 의미가 바뀌어야 할 것”, “국민이라는 기준을 변화시키면 다양한 서술 가능할 것. 그것이 가능하려면 역사학자들이 해야 할 것”   이와 같은 열띤 토론을 마치고, 류지에 선생이 논점을 정리하였다. 요컨대 이번 테마를 선정하면서,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 이번 키워드 대국, 소국. 주목받았는데, 시기가 전전에서 전후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전후 역사로 오면, 문제 설정이 달라진다. 전전-전후 연속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문제로 설정할 것인지 생각해야만 할 것이며, 각자 다른 공간에서 어떻게 국경을 넘어서려 하고 있는지, 국경을 초월한 역사대화는 우리들의 일이나, 각국 역사가들이 각국 안에서 직면하고 있는 국경의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역사인식 문제는 자국내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5세션은 본 주제에서 조금 벗어나 시오데 히로유키 선생(교토대)의 사회로 앞으로의 국사들의 대화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중국의 펑하오 선생, 한국의 정순일 선생, 일본의 무라 카즈아키 선생(도쿄대)이 차례로 의견을 제안했다. 공통되는 의견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앞으로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은둔형” 국사연구자를 한 사람이라도 많이 끌어내자는 미타니 선생의 취지를 앞으로도 고민하자는 히라야마 선생의 의견, 형식을 조금 바꾸어 연구자들이 함께 답사하고 그곳에서 서로의 거리를 더욱 좁힐 수 있는 스몰토크를 하는 자리를 만들자는 한성민 선생의 의견도 경청해야 마땅할 코멘트였다.   마지막으로 쏭지용 선생(난카이대)이 폐회 인사를 건넸다. 첫번째로 회의준비와 진행 매우 성공적이었다. 아쓰미 재단의 이마니시 준코 상무이사, 미타니 히로시 선생, 류지에 선생, 태국 쭐라롱콘대학에 감사하며, 동시 통역과 스텝들에게도 감사를 표한다는 것. 두번째, 학술적 성과가 풍성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향후 국사연구 방향에 대해 지혜롭고 건설적 의견을 들었다는 것, 요컨대 국사연구 깊이 더해가는 데 시사점이 있으며, 회의 이후 재단과 참가자들이 머리 맞대고 밝은 미래 설계할 것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말씀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국사들의 대화의 성과를 확산하기 위한 새로운 작업 중 하나인 교재화 프로젝트의 현 상황을 보고하는 자리가 있었다.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한 작업은 큰 기대를 갖게 해주었다.   국사들의 대화가 대면 회의와 코로나 시기 온라인 회의를 거치며 9회에 이르렀다. 개인적으로 장소와 주제를 상당히 바꾸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한 이번 대화는 기억에 남는 점이 특히 많았다. 우선 한국의 동남아시아 연구가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일본, 중국에 비해 연구자가 적은 것은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연구 주제가 다양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학계 차원의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다양한 연구, 시도를 포용해주는 분위기가 국사 내부에서부터 만들어진다면, 나라들 간의 대화도 보다 잘 이루어지지 않을까. 한 사람의 국사 연구자로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지금까지의 국사 대화에서도 느낀 바지만, 연구자의 폭이 더 넓어진 이번 대화에서도, 여러 연구자들이 나와 비슷한 고민 (정치와 학문, 사회가 바라는 학문과 나의 연구 사이에서의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한편, 화인, 화교 배척사건은 동남아시아에서만 일어났던 일은 아니다. (화교 사회가 동남아에 아주 크게 형성된 것은 사실이나) 중국인들이 다수 진출한 다른 지역에서도 그들에 대한 배척 사건이 일어났었다는 사실도 환기해야 할 것이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중국인 배척 사건이 일어났으며, 중국에서는 조선인에 대한 배척사건도 있었다. 이와 같이 각 국에서 일어난 이민자 커뮤니티에 대한 배척 사건이 왜 일어나는지 함께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둘째 날 저녁. 국사대화 참가자 대부분이 자신의 과제를 마친 후의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야외 음식점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술적인 대화만큼, 얼굴을 맞대고, 어깨의 짐을 살짝 내려놓고, 서로의 속내를 교환하는 사적인 대화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자리였다.   당일 사진 앙케트 결과   ■김경태 Kim Kyongtae 대한민국 포항시 출신. 한국사 전공.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박사과정 중인 2010 년~2011 년 도쿄 대학 대학원 일본문화연구전공(일본사학) 외국인 연구생 자격으로 유학. 2014 년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 취득.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고려대학교 인문역 량강화사업단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전남대학교 역사교육과 부교수로 재직 중. 전쟁의 파괴적인 본 성과, 전쟁이 초래한 황무지에서도 끊임없이 자라나는 평화 사이에 존재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 다. 주요 저작 : 허세와 타협 -임진왜란을 둘러싼 삼국의 협상- (동북아역사재단, 2019).      
  • SGRA 리포트 No.106 제8회 한국・일본・중국 간 국사들의 대화 가능성 「20세기의 전쟁·식민지 지배와 화해는 어떻게 이야기되어 왔는가: 교육·미디어·연구」

    SGRA 리포트 No.106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제 72 회 SGRA 포럼 제8회 한국・일본・중국 간 국사들의 대화 가능성 20세기의 전쟁·식민지 지배와 화해는 어떻게 이야기되어 왔는가: 교육·미디어·연구 2024년 7월 30일 발행   〈개최 취지〉 2016년부터 시작된 ‘국사들의 대화’ 목적은, 한중일 ‘국사(國史)’ 연구자의 교류를 심화함으로써 지(知)의 플랫폼을 구축하고, 3 국 간에 가로 놓여 있는 역사인식문제 극복에 지혜를 제공하는 것이다.   동아시아 역사문제의 기원은, 20 세기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둘러싼 인식 차이에 있다고 지적되곤 한다. 그러나 그간 진행된 한일, 중일 역사공동연구 보고서에서도 나타났듯, 개별적 역사 사실의 해석을 둘러싼 차이는 있으나, 20 세기 동아시아 역사의 큰 틀에 대한 인식에는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동아시아 국제관계가 종종 역사문제로 갈등을 빚는 이유의 하나로, 상대방의 ‘역사인식’에 대한 인식이 불충분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전후 동아시아는 냉전, 화해, 일본 주도의 경제협력, 중국의 대두 등 수차례 복잡한 변화를 경험했다. 각국은 각자의 정치·사회적 환경 속에서, 자국사의 문맥에 기반한 역사관을 형성하고, 국민에게 보급해 왔다. 전후 각국의 역사관은 대체로 폐쇄적인 역사 환경 속에서 형성되어온 것이다. 각국의 역사인식 형성과정, 내재하는 논리, 정치와의 관계, 국민 속에 확산되는 프로세스 등에 대한 정보는, 동아시아 역사가에게 공유되어 있지 않다. 역사인식을 둘러싼 대립은, 이와 같은 정보의 결여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20 세기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둘러싼 국민의 역사인식은, 국가의 역사관, 가정교육, 학교 교육, 역사가의 연구와 사회적 발신, 미디어, 문화·예술 등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되어온 것이다. 역사가의 연구가 국가의 역사관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학교 교육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금번 대화의 주제 가운데 하나는 ‘역사가가 전후 어떻게 역사를 연구해왔는가’이다. 전후 동아시아 각국에서는 격렬한 정치 변동이 발생했고, 역사가의 역사연구와 역사인식도 격렬한 동요를 경험했다. 역사가의 연구와 사회적 발신의 궤적을 되짚어 가는 것은, 각국 역사인식의 형성과정을 확인하는 유효한 수단일 것이다.   영화·TV 등 미디어도 국민의 역사인식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전후 각국은 각자의 역사관에 서서, 전쟁과 식민지에 관계된 작품을 다수 창작해왔다. 이 같은 작품이 국민의 역사인식에 준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또한, 미디어 교류가 진행되는 속에서, 다수의 영화와 TV 드라마가 공동으로 제작되었다. 국민 서로가 이러한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역사 대화를 해왔다. 각국의 문화, 사회 환경이 역사인식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던 것일까? 이 역시 확인하고자 하는 문제 중 하나다.   역사인식을 둘러싼 국가 간 대립이 발생하면, 상대방 역사해석과 역사인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러나 자국 내에서 발생한 정치, 사회 변동에 유발된 역사인식의 대립이 오히려 더 많을 것이다. 상대방의 역사인식을 인식하는 과정은, 자신의 역사인식을 되묻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같은 관점에서 제 8 회 국사 대화는, 지금까지의 대화를 더욱 심화할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목차〉 제 1 세션 [ 사회 : 무라 가즈아키 (村 和明, 도쿄대 )] 【개회사】 류 지에 ( 劉 傑, 와세다대 ) 【개회취지】 미타니 히로시 ( 三谷 博, 도쿄대 명예교수 )   제 2 세션 부주제 : 교육 [ 사회 : 남 기정 ( 南 基正, 서울대)] 【발표1 ( 한국)】 해방 후 한국인 식자층의 탈식민 담론과 역사서사 구성의 변화 김 태웅(金 泰雄, 서울대) 【발표 2 ( 중국)】 역사 기억 전쟁과 역사 글쓰기 윤리—20세기 중반 중국의 역사전쟁 탕 샤오빙 ( 唐 小兵, 화둥사범대) 【발표 3 (일본)】 일본의 역사교육은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어떻게 전해왔는가 : 교과서와 교육 현장에서 생각하다 시오데 히로유키(塩出 浩之, 교토대) 【토론· 질의응답】 패널리스트 토론 및 참가자와의 질의응답   제 3 세션 부주제 : 미디어 [ 사회 : 리 언민( 李 恩民, 오비린대 )] 【발표 4 ( 중국)】 자기 보호 , 애국 및 굴종: 위만(偽満, 만주국)‘ 협력자’의 심리 탐색 장 페이( 江 沛, 난카이대 ) 【발표5 (일본)】 전후 일본의 미디어 문화와‘ 전쟁 이야기’의 변용 후쿠마 요시아키 ( 福間 良明, 리쓰메이칸대 ) 【발표 6 ( 한국)】 현대 한국 미디어의 식민지, 전쟁 경험 형상화와 그 영향–영화, 드라마를 중심으로 이 기훈 ( 李 基勳, 연세대) 【토론· 질의응답】 패널리스트 토론 및 참가자와의 질의응답   제 4 세션 부주제 : 연구 [ 사회 : 쏭 지용 (宋 志勇, 난카이대 )] 【발표7 (일본)】 ‘ 나’의 역사,‘ 우리들’의 역사: 이로카와 다이키치의 ‘자기역사(自分史)’론을 단서로 야스오카 겐이치 ( 安岡 健一, 오사카대 ) 【발표8 (한국)】 ‘ 발전’ 너머, 새로운 역사쓰기의 가능성: 한국의 식민지기 경제사 연구의 향방 양 지혜 (梁 知恵, 동북아역사재단 ) 【발표9 (중국)】 중화민국기 중국인은‘ 일본 군벌’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천 훙민( 陳 紅民, 저장대 ) 【토론· 질의응답】 패널리스트 토론 및 참가자와의 질의응답 논점정리 : 류 지에( 劉 傑, 와세다대 )   제 5 세션 지정토론/전체토의 [ 사회 : 정 순일(鄭 淳一, 고려대)] 논의를 시작하며 : 미타니 히로시 ( 三谷 博, 도쿄대 명예교수 ) 지정토론자 ( 발언순) 김 헌주 (金 憲柱, 국립한밭대 ), 위안 칭펑 ( 袁 慶豊, 중국미디어대 ) 요시이 후미(吉井 文美,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시 보공(史 博公, 중국미디어대)   제 6 세션 지정토론/전체토의 [ 사회 : 펑 하오(彭 浩, 오사카공립대 )] 지정토론자( 발언순) 장 샤오강 (張 暁剛, 장춘사범대 ), 김 호 ( 金 澔,서울대 ), 히라야마 노보루 ( 平山 昇, 가나가와대 )   【폐회사】 조 광( 趙 珖, 고려대 명예교수 ) 8 회 국사 대화를 돌아보며 향후에 대해 이마니시 준코 ( 今西 淳子, 아쓰미국제교류재단)   강연자 약력   후기를 대신하여 김 경태(전남대)   참가자 목록
  • 제74회 SGRA 포럼/제9회 한국・일본・중국 간 국사들의 대화 가능성 「동아시아의 ‘국사’와 동남아시아」

    아래와 같이 제9회 한국・일본・중국 간 국사들의 대화 가능성을 개최합니다. 참가를 희망하시는 분은 사전에 참가 등록을 부탁드립니다. 청중 분들의 카메라와 마이크를 오프로 한 Webinar 형식으로도 개최하오니 많은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주   제:「동아시아의 ‘국사’와 동남아시아」 일   시: 2024 년8월 10일 (토) 9:00~12:30(태국 시간), 11:00~14:30(한국 시간) 8월11일 (일) 9:00~15:30(태국 시간), 11:00~17:30(한국 시간) 장   소: 왕립쭐라롱껀대학교 및 온라인(줌 웨비나) 언  어:한중일 3 개국어 (동시통역 제공)   주  최: 한국·일본·중국 간 국사들의 대화가능성 실행위원회 공동주최: 아쓰미국제교류재단 세키구치글로벌연구회(SGRA) 조 성 금: 도쿄구락부   ※참가 신청  (참가비:무료) 문의: SGRA사무국([email protected], +81-(0)3-3943-7612)   ■개최 취지 ‘국사들의 대화’ 기획은 한중일 ‘국사’ 연구자의 교류를 심화시킴으로써 지(知)의 플랫폼을 구축해, 삼국 간 역사인식문제 극복에 대한 지혜 제공을 목적으로 대화를 거듭해 왔다. 제1회에서 한중일 각국의 국사연구와 역사교육 상황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해, 그 후 13세기부터 시대를 따라가며 주제를 설정하고 대화를 심화시켜왔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한 시기에는 온라인 대화를 통해, 역사학을 둘러싼 시의적절한 주제를 다뤘다.   지난해 대면 개최가 가능해지면서 ‘국사들의 대화’ 기획 당시부터 구상된 20세기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둘러싼 국민의 역사인식을 주제로 내걸었다. 다양한 측면에서 풍부한 대화가 이뤄졌고 ‘국사들의 대화’ 기획의 목표 중 하나가 달성되었다. 앞으로는 8년간의 대화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한중일 국사 연구자의 네트워크를 어떻게 더욱 발전시켜 나갈지, 또 이를 위해 어떠한 방침으로 대화를 계속해 나갈지가 과제가 될 것이다.   이 같은 새로운 단계를 맞이해, 금번 제9회에는 개최지와 관련하여 ‘동남아시아’와 각국 국사의 관계를 주제로 삼았다. 한국·중국·일본의 국사연구는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왜, 어떻게 이 지역에 주목해 왔을까? 과거 여러 단계에서 다양한 정치, 경제, 문화에서의 교류와 ‘진출’이 있었다. 이는 정부간 관계이기도 하고, 그에 머무르지 않는 사람이나 사물의 이동이기도 했다. 이러한 모든 관계나 그에 대한 관심의 본질은, 각국에서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이러한 직간접 관계의 해명에 더해, 비교적 조건이 가까운 사례로서 자국 내 변화 과정과의 비교도 이뤄져왔다. 원래 ‘동남아시아’라는 틀 자체도, 국민국가나 ‘동아시아’라는 틀과 동일하게 세계의 격동 속에서 태어난 것으로 역사학의 고찰 대상이 되어 왔다.   본심포지엄에서는 각국 학계를 선도하는 연구자 중심으로 과거 연구 동향과 최근의 성과가 소개된다. 이러한 연구는 어떠한 사회적·역사적 배경 아래에서 진행되어 온 것인가? 이러한 방법과 시각에 근거해 자국사에 어떠한 영향이 있었고, 또 향후 어떠한 전망을 그릴 수 있을 것인가? 논의와 대화를 통해 삼국 국사의 대화를 조금 더 다원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고, 보다 열린 형태로서 발전의 방향성까지 생각해보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프로그램 8월 10일 (토) 9:00~12:30(태국 시간),11:00~14:30(한국 시간) 【제1세션 (9:00~10:30) 사회: 류 지에 (와세다대)】 개회사: 미타니 히로시 (도쿄대 명예교수) 기조 강연:양 퀘이쏭(베이징 대, 학 화동 사범 대학) 포스트 콜로니얼 시대의 ‘내셔널리즘’ 충돌의 원인을 둘러싼 고찰-마오쩌둥 시대의 영토 분쟁에 관한 전략 변화를 단서로   【제2세션(11:00~12:30) 사회: 남 기정(서울대)】 발표: 파타짓 탕신만콩 (도쿄대) ‘대나무 외교론’에서의 대국관계와 소국의식 요시다 마스미(미츠이문고) 일본 근대사와 동남아시아-1930년대의 평가를 둘러싸고- 윤 대영 (서울대) 한국의 동남아시아사 연구 가오 옌졔 (샤먼대) 화교 사무와 외교: 1959년 인도네시아 화인 탄압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   8월11일 (일) 9:00~15:30(태국 시간), 11:00~17:30(한국 시간) 【제3세션(9:00~10:30) 사회: 펑 하오(오사카 공립대)】 지정토론과 자유토론 토론자: 【한국】정 재현(목포대), 한 성민(고려대) 【일본】사토 유키(릿쿄대), 히라야마 노보루(가나가와대) 【중국】정 제시(윈저우대), 정 정(효고현립대)   【제4세션(11:00~12:30) 사회: 정 순일(고려대)】 자유 토론 토론 정리: 류 지에 (와세다대)   【제5세션 (14:00~15:30) 사회: 시오데 히로유키(교토대)】 앞으로의 국사대화 폐회인사: 쏭 지용(난카이대)   ※동시통역 일본어⇔중국어:정 리(丁 莉, 북경대)、송 강(宋 剛, 북경외대) 한국어⇔일본어:이 혜리(李 恵利, 한국외대), 안 영희(安 暎姬, 한국외대) 중국어⇔한국어:김 단실(金 丹実, 프리렌서), 박 현(朴 賢, 교토대)     ※프로그램 및 회의 자료는 아래의 링크를 참조해 주십시오. ・프로젝트 개요   일본어 버전 사이트 중국어 버전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