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logue in the National Histories
김경태 제7회 국사들의 대화 보고서
2022년 8월 6일 개최된 제7회 한국・일본・중국 간 국사들의 대화 가능성의 주제는 「‘역사 대중화’와 동아시아의 역사학」였다. 역사대중화와 공공역사는 국적과 전공 분야를 뛰어넘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주제였고, 실제로 시간이 많이 부족할 정도로 열띤 대화가 오갔다.
첫 번째 세션은 리언민(李恩民) 선생님의 사회로 진행된 문제제기와 지정토론이었다. 펑하오(彭浩) 선생님의 개회 취지에 이어, 한성민 선생님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필리핀에서 열렸던 제4회 국사들이 대화 이래 열성적으로 참여하여 항상 날카로운 의견을 들려주었던 한성민 선생님의 문제제기는 시의적절했다. 한선생님은 “‘역사의 대중화’에 대해 함께 생각해봅시다”라는 제목으로 문제제기를 했다. 한선생은 평소 동료 학자들과 함께 이 주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고, 이번 문제제기는 그러한 논의를 정리한 것이기도 했다. 한국의 사례를 역사학의 위기와 역사학자의 위기, 그리고 현실적 문제(역사학과의 존속과 졸업자의 취업)이라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소개하였다. 요컨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역사학도 변해야 하고, 또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역사학자의 역사 독점시대가 끝났음을 인정하고,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선생님은 그 대응 방안 중 하나로 퍼블릭 히스토리(공공역사)를 소개했다. 이 개념, 혹은 방식이 아직 한중일 삼국에 그 이론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니나, 이에 대한 고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었다. 역사학이 스스로의 존재의의를 증명해야 할 시기라는 제언도 함께 해주었다.
이에 대해 지정토론을 맡은 세 나라의 연구자(중국의 정지에시(鄭潔西), 일본의 무라 가즈아키(村和明), 한국의 심철기(沈哲基))들은 조심스럽지만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각 나라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고민들을 보여주어 흥미로웠다. 나라별로 역사학계의 권위(예를 들면 역사가가 양보해서는 안 되는 것), 앞으로의 역할 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차이를 보였다. 특히 중국의 경우에는 대중의 역사 참여가 활발하며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뉴미디어와 함께 비전문적 역사가들이 대중들이 원하는 틈을 찾아 들어오는 장면과 역사학이 직업으로서 안정성을 잃는 모습(취업 전선의 어려움)은 공통되는 듯했다. 이것은 세계적인 문제일까. 공공역사학이라는 대안을 인정하고 이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공통적으로 세 나라에서도 공공역사의 개념에 대해 정의할 필요성(범위를 마련)이 제기되었다.
두 번째 세션은 남기정 선생님의 사회로 진행된 자유토론이었다. 먼저 류지에(劉傑) 선생 논점정리가 있었다. 역사가 정치와 관계될 때 (도구가 될 때)를 주의해야 한다는 점, 역사가 일반이 극복해야 할 문제, 역사가가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 등을 짚어주었다.
자유토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논의가 있었다.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활발한 대중 역사의 모습, 그리고 미디어와 급변하는 세상이라는 현실을 지적(마오 리쿤(毛立坤)), 역사의 대중화는 필연적인 것 -역사적으로 국가에서 정리하는 것이 원칙이었음에도 이에 대한 도전은 언제나 있었다- 모두 자신이 역사가가 되고 싶다는 것이 공공역사학의 핵심. 오히려 기회이며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태도가 중요. 물론 참을 수 없는 것(지나친 상업화, 정치적 개입, 역사수정주의)는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김호), 전향적으로 대중의 역사를 받아들여야 하며, 기회로 보아야 한다는 것, 대중역사의 효용성도 있다는 것(시오데 히로유키(塩出浩之), 사토 유키(佐藤雄基)). 이와 같이 비교적 낙관적인, 혹은 역사학자의 적극적 변화를 촉구하는 견해 외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히라야마 노보루(平山昇) 선생님은 근대 일본에서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일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무라 가즈아키 선생님은 위기와 기회의 양립에는 동의하면서도, 역사전문가가 전문가 이외의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이른바 유사 역사학의 가장 큰 위험성은 사회를 분열시킨다는 것, 예를 들면 적을 만드는 것이라는 지적은 중요했다. 두 가지 상반된 논의가 아니라 실제로는 역사학자로서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대안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역사 대중화는 역사학자들이 모두 함께 고민하여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이지, 물리치고 이겨야 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세 번째 세션은 리언민 선생님의 사회로 미타니 히로시(三谷博) 선생님의 총괄과 조광 선생님의 폐회 인사로 마무리 되었다. 두 선생님 모두 “젊은” 연구자들의 고민을 공유해주면서 격려의 말씀도 해주었다.
이번 “대화”는 모두 어깨의 짐을 조금 내려놓고 자유롭게 이야기 해보자는 것이 목표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대화를 하다 보니 같은 고민을 하는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무거운 짐이 다시 주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앞으로 역사학자의 역할은 무엇이 될까. 이번 대화에서 우리는 “대중”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나, 대중도 하나로 바라봐서는 안 될 것이다. 대중 중에서는 선과 악이 분명히 구분된 감동적인 역사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 특정 분야에 대해 전문 연구자보다 더 매니아틱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 암기위주의 역사교육으로 인해 흥미를 잃은 이도 있을 것이다. 혹은 내가 알고 있던 역사는 가짜였다라면서 이른바 역사수정주의로 돌아서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역사연구자가 모든 대중을 만족시킬 방법은 없을 것이나, 이러한 다양한 모습의 대중들 앞에서 역사 전문가로서 해야 할 역할은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다.
필자는 대중강연과 학술회의의 중간 정도 성격의 행사에 가끔 가게 된다. 때때로 재미가 없다. 감동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역사 드라마와 같은 감동적인 강연을 원한 분들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는데,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때로 그분들의 흥미에 맞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두 가지 정도 준비하기도 한다.
요즈음은 하나의 직업에도 다양한 역할이 요구되는 것 같다. 앞으로 역사연구자도 좋은 학술 논문을 쓰는 순수한 임무 외에, 대중들이 적어도 잘못된 역사에 빠져들지 않도록 방향을 안내해주는 (물론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와 형식으로) 역할을 감당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재미있지만 잘못된 이야기가 있다면 바로잡아야 할 것이고, 역사 매니아들이 놓칠 수 있는 역사적인 통찰력을 제시해주어야 할 것이다. 대중서 쓰기, 외국의 좋은 서적을 번역하는 작업, 다양한 미디어를 사용해서 정확한 역사를 알려주는 일 등이 구체적인 방법일 것이다. 이런 일들을 학자의 역할이 아니라고 하여 무시해서는 안 되고 겁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에서 대중과 연결은 역사연구자의 의무이다.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 화석과 같은 학문에 만족한다면, 그러한 역할만을 맡게 될 것이다.
■김경태 Kim Kyongtae 대한민국 포항시 출신. 한국사 전공.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박사과정 중인 2010 년~2011 년 도쿄 대학 대학원 일본문화연구전공(일본사학) 외국인 연구생 자격으로 유학. 2014 년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 취득.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고려대학교 인문역량강화사업단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전남대학교 역사교육과 조교수로 재직 중. 전쟁의 파괴적인 본성과, 전쟁이 초래한 황무지에서도 끊임없이 자라나는 평화 사이에 존재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작 : 허세와 타협 -임진왜란을 둘러싼 삼국의 협상- (동북아역사재단, 2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