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logue in the National Histories
김경태 제8회 국사들의 대화 보고문
8월 8일 약간 흐린 날씨 속에 제8회 한국·일본·중국 간 국사들의 대화 가능성 「20세기의 전쟁·식민지 지배와 화해는 어떻게 이야기되어 왔는가: 교육·미디어·연구」가 대면과 온라인으로 시작되었다.
와세다대학에 마련된 회의장에는 일반 참가자들도 자리를 가득 메웠다. 첫째 날은 4개의 세션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세션은 무라 가즈아키 선생(도쿄대)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본격적인 주제 발표에 앞서 류지에 선생(와세다대)의 개회사와 미타니 히로시 선생(도쿄대 명예교수)의 취지설명, 발표 토론 및 참가자들의 자기 소개가 있었다. 류지에 선생은 20세기 전쟁과 식민지배, 화해가 각국에서 지금까지 어떻게 이야기되었는지에 대해, 그동안 진행해온 “국사들의 대화”를 기반으로 냉정하고 침착한 논의를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상대의 역사인식에 귀를 기울이는 기회가 되기를 요청했다.
미타니 선생은 “미래를 위하여”라는 키워드를 먼저 꺼냈다. 국사들의 대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이번 주제를 꼭 시도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점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이어서 국사들의 대화라는 큰 학술적 모임을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일본뿐 아니라 여러 나라들이 역사에 관해 대화를 쌓아가던 중, 각국 정부가 대결정책을 펼치며 역풍의 분위기가 만들어졌지만, 그럼에도 역사 대화가 재개되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두 번째에서 네 번째 세션은 각각 교육, 미디어, 연구를 주제로 한 세 발표와 발표자 상호간의 토론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두 번째 “교육” 세션은 남기정 선생(서울대)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첫 발표는 김태웅 선생(서울대)의 “해방 후 한국인 식자층의 탈식민 담론과 역사서사 구성의 변화”였다. 이 발표에서는 한국이 해방(1945년 8월 15일 독립) 이후 역사 교과서를 쓰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한국의 국내외 정치와 역사 교과서 내용 사이의 관계를 긴밀히 추적했다.
탕샤오빙 선생(화둥사범대)은 “역사 기억 전쟁과 역사 글쓰기 윤리—20세기 중반 중국의 역사전쟁”에서 장춘 포위전에 대한 상반된 기억 및 평가를 소개하면서, 역사와 계몽 사이의 긴장 관계라는 문제를 제시해주었다.
시오데 히로유키 선생(교토대)은 “일본의 역사교육은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어떻게 전해왔는가: 교과서와 교육 현장에서 생각하다”에서 일본이 전쟁 이후 교과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겪었던 변화와 변화의 계기를 설명하였는데, 특히 교과서가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사용되었는가에 대한 부분, 현재 진행형인 고민(가해자와 피해자로서의 양면 등)은 그동안 쉽게 접하지 못했던 내용으로, 한국과 중국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먼저 일본의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들의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새로운 역사총합 과목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역사교육에서 사료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교육 현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한계(입시 등으로 인한) 등이 거론되었다. 한국과 중국도 유사한 경험 및 고민이 있다는 사실을 공유할 수 있었다. 기억이 계몽, 위로를 위해 (엄밀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도 있는 방향으로) 사용되는 사례가 있으며, 개인의 다양한 기록과 같은 (역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는) 자료가 주목을 받고 있는 문제도 논의되었는데, 이를 반드시 부정적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될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이 고민은 이번 “대화”의 주요한 논점 중 하나였다.
세 번째 세션은 “미디어”가 주제였다. 리언민 선생(오비린대)이 사회를 담당하였다. 장페이 선생(난카이대)은 “자기 보호, 애국 및 굴종: 위만(僞滿: 만주국) ‘협력자’의 심리 탐색”에서, 중국에서 중국과 일본의 전쟁은 국가 대 국가의 전쟁으로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만, 과연 당시 중국에 살던 사람들에게도 그러했는지에 대해, 한 인물의 일기를 통해 살펴보았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존이 중요했으며, 여러 가지 얼굴(반국과 애국)을 지닌 이도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역사학자는 약자인 민중에 눈을 돌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을 하였다.
후쿠마 요시아키 선생(리츠메이칸대)은 “전후 일본의 미디어 문화와 ‘전쟁 이야기’의 변용”에서 영화를 중심으로 미디어가 전쟁을 말하는 방식의 흐름과 그 시대적 배경을 함께 설명해주었다. 피해와 가해, 모두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오랜 기간들의 고민을 자세히 알려주었고, 도리어 이러한 고민이 무뎌진 현재,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시민사회 사이에서 역사연구자들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라는 과제를 던져주었다.
이기훈 선생(연세대)은 “현대 한국 미디어의 식민지, 전쟁 경험 형상화와 그 영향 – 영화, 드라마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한국의 전쟁 영화를 분석하였다. 한국에서 식민지와 전쟁은 다른 경험이었다. 그러나 한국이 국민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를 함께 이야기하기도 했으며, 그 속에서 선과 악이 이항 대립하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모습, 그리고 21세기에 가까워지며 변화가 발생하는 모습을 영화 장면을 통해 보여주었다.
네 번째 세션의 주제는 “연구”였다. 쏭지용 선생(난카이대)의 사회로 이날의 마지막 세션이 진행되었다. 야스오카 켄이치 선생(오사카대)은 “‘나’의 역사, ‘우리들’의 역사: 이로카와 다이키치의 ‘자기역사(自分史)’론을 단서로”에서 전통적인 역사 인식의 “외부”에 있는 일반 시민의 역사 인식, 그리고 그에 대한 역사학의 인식을 주제로 삼았다. 나의 역사를 쓰는 것을 통해 스테레오 타입의 역사에 휩쓸리지 않은 이야기가 남을 수 있다. 이를 어떻게 살려야 할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며, 이것이 역사학이 시민사회에 공헌할 부분이라는 의견을 제시해주었다.
양지혜 선생(동북아역사재단)은 “‘발전’ 너머, 새로운 역사쓰기의 가능성: 한국의 식민지기 경제사 연구의 향방”에서 먼저 한국의 식민지기 경제사 연구의 몇 가지 방향(식민지 수탈론, 식민지 근대화론, 그리고 식민지근대성론)에 대해 설명하였다. 21세기에 접어들며, 기존 연구 경향의 속도가 줄어들고, 학술적인 논의를 넘어선 강렬한 정치적 공격이 등장하면서 위기를 맞고 있지만, 환경과 생태와 같은 비판적 대안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가지는 연구였다.
천훙민 선생(저장대)은 “중화민국기 중국인은 “일본 군벌”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인식했을까”에서 용어에 부여되는 역사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서, “일본 군벌”이라는 용어에 주목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용어의 의미와 당시의 의미는 다를 수도 있으며, 시대, 발언 주체, 진영에 따라 다른 맥락에서 사용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고 하였다. 데이터베이스의 구축과 활용, 빅데이터의 활용 등이 활성화되고 있는 현재의 학계에서 이러한 문제 의식에 입각한 연구들이 적극적으로 시도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 세션의 토론 시간에는 주로 (역사학자가 아닌) 개인의 역사 글쓰기에 대한 문제(역사와 개인사의 충돌 가능성), 개인의 역사 쓰기에 대한 역사학자의 개입 방식 등을 둘러싼 세 나라 연구자들의 고민과 논의가 오고 갔다. 의견이 일치되지는 않았으나, 개인의 역사, 자기 역사 서술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들은 흥미로웠다.
마지막으로 류지에 선생이 첫째 날의 논점을 정리해주었다. 요컨대 세 나라가 현대에 경험한 역사적 맥락이 다르기에, 각국에서 전쟁 이후의 역사상을 만들 때 다른 부분들이 나타났다는 것, 이 서로 다른 맥락에 근거한 여러 모색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 서로 다른 역사관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역사교육에서 이른바 동아시아의 새로운 역사상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상당히 공통적인 부분들(일본의 역사총합, 한국의 동아시아사, 중국 상하이에서의 시도)이 보이고 있다는 점도 거론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가는 무슨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이번 발표에서는 정치와 역사, 역사와 도덕, 사료의 문제가 이슈로 등장하였는데, 그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한 노력이 지속된다면 역사 화해는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8월 9일은 종합토론의 날이었다.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미타니 선생의 코멘트가 있었다. 퍼블릭을 어떻게 역사에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개인적인 연구 경험에 비추어 친절히 들려주었다. 즉, 어떤 연구 주제에 대한 사료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사료적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도 되는 가라는 딜레마에 주의해달라는 부탁이었다.
토론은 두 세션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다섯 번째 세션은 정순일 선생(고려대)이 사회를 맡아주었다. 이 세션에서는 “세 나라의 각기 다른 맥락의 피해자 서사에 대해” “일본의 50~70년대 미디어 문화는 현 시대에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만주의 ‘협력자’에 대한 해석의 평면성”(김헌주 선생(국립한밭대)), “만주국에서 만든 영화는 어느 나라의 영화로 보아야 할 것인가” (위안칭펑 선생(중국미디어대)), “개인의 눈으로 본 역사에 대한 사례(영국 광산 경영자 네이던)와 전쟁과 식민지배의 다원적 이해의 가능성” “한국과 일본이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시기 개최된 한일 공동 전시에서 보인 가능성” (요시이 후미 선생(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항일 드라마의 생성 로직과 전파 방식, 그리고 일반인들에 대한 영향” (시보공 선생(중국미디어대)) 등 지정 토론자의 질의가 있었다.
새로운 교과서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역사총합의 경우 누가 가르칠 것인지 등 현장에서 부딪힐 여러 과제가 남아 있고, 내용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이전의 문제를 뛰어넘으면서도 학생들이 일본 역사를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소개해주었다. 미타니 선생은 세계사와 일본사를 융합하고, 글로벌화와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두 요소가 커트되는 등의 한계가 있었으므로, 앞으로 제대로 된 지도 요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는 부분을 보충해서 설명해주었다.
플로어에서도 의미있는 코멘트가 있었다. 가와사키 다케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와세다대)는 역사 기사가 젊은 기자에 의해 작성되어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그것은 사실이나 주요 언론의 기자야말로 대학에서 교육받은 사람이므로 교육계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 젊은 기자들은 근현대사의 주요한 사건을 경험할 수가 없었으므로 한계가 없을 수 없다는 점 등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젊은 기자들이 어려움을 겪으며 기사를 작성할 수밖에 없겠지만, 앞으로 관동대지진 100주년 등 여러 기사가 나올 것이므로, 학계에서도 함께 노력해달라는 부탁으로 끝을 맺었다. 이번 대화의 주요 논점과도 부합하는 코멘트였다. 역사 연구자는 프로페셔널로서의 자기 소양을 지키되, 새로운 시대에서 요구하는 새로운 역할도 담당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여러 “집단”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섯 번째 세션은 펑하오 선생(오사카공립대)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스밍루 일기의 진실성에 대해” (장샤오강 선생(장춘사범대)), “생태사가 국민국가 단위의 역사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공동체 내 악의 평범성에 대한 성찰과 남겨진 숙제” “역사 교육은 ‘왜’, ‘어떻게 해서’를 넘어 ‘어디로’라는 방향도 제시해야할 것” “역사학의 미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며, 그것은 인간에 대한 존중을 담은 것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제언” (김호 선생(서울대)), “국가의 역사와 지방(지역)의 역사의 관계” “지방에서 프로페셔널한 역사학자를 육성할 기반에 대한 문제” “수학여행을 예로 든 지방의 역사(교육)과 관광의 딜레마” (히라야마 노보루 선생(가나가와대)) 등의 지정 토론 외에도, “중국 학생들의 근대화에 대한 인식문제의 원인” (이치카와 토모오 선생(오키나와국제대))과 사료비판을 교재화 할 필요성에 대한 현장 교사분들의 건의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조광 선생(고려대 명예교수)의 폐회사와 이마니시 준코 아쓰미 재단 상무이사의 회고가 있었다. 조광 선생은 오랜만에 개최된 대면 회의에서 비교적 충분한 토론 시간이 마련된 만큼, 근래 가장 만족스러운 회의가 되었다고 평가하였고, 202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을 앞두고, 세 나라에서 각각 광복(光復), 승전(勝戰), 종전(終戰)이라는 서로 다른 용어와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해 각자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질 것인데, 국사들의 대화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하였다. 이마니시 상무이사는 지금까지의 “국사 대화”를 회고하면서, 내년 태국에서의 만남을 약속하였다.
제8회 국사들의 대화에서 세 나라 연구자들은 각국이 처한 현상과 그러한 배경에 따른 각국의 고민을 들려주었다. 세 나라는 20세기 격동하는 국제 정세 속 동아시아라는 같은 지역에 존재하면서 서로 다른 어려움을 겪었다. 각국의 역사연구자들은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기록할지 고민했고, 그 역시 역사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했다. 자국 역사에 대한 평가와 해석을 둘러싼 논의는 계속되고 있고, “해결”되지 않은 부분도 많다는 것을 이번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고민 중에는 공통적인 것도 있고, 다른 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 것도 있었다. 자국사에서의 논의와 고민을 공유하는 것에서, 세 나라 사이의 역사 대화를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필자는 전남대 사범대학 역사교육과에 재직하고 있다. 이곳은 중고등학교 역사 교사를 길러내는 곳이다. 이번 대화는 필자 본인에게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이러한 고민을 살려 학생, 교사와 함께 노력할 것이다. 이번 대화에는 일본의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있었다.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교사분들 역시 한국의 교사분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연구자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교사와 연구자들이 함께 소통하는 자리가 더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번 대화에서 가장 거론이 많이 된 이슈는 개인의 역사와 역사 교육 현장에 대한 것이었다. 이는 급변하는 시대, 다가올 미래에 역사학이 맡아야 할 역할에 대한 고민이 담긴 것이었다. 반지성주의의 만연, AI의 발전, 출생률의 저하 등 급변하는 시대에, 어떤 역사연구자들은 이미 역사학의 역할은 끝났다며 한탄하기도 한다. 역사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이며 할 수 있을 것인가. 역사학은 원래의 연구 방식도 유지하되,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도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김호 선생의 제언이 기억에 남는다. “미래의 역사학은 상호간의 모욕을 중지하고 ‘인간에 대한 존중’을 담아야 한다” “인의(仁義)가 가진 배타성을 경계하고, 불인(不仁)과 불의(不義)에 대한 감각을 단련하여 과도한 의와 편협한 인을 제어하자”. 나는 최근에 본 영화와 책이 떠올랐다. 근래 가장 유명한 영화 중 한편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서로 위로하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여 공감을 얻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Why Fish Don’t Exist)”라는 책에서 룰루 밀러(Miller, Lulu)는 ‘가치 없는 생명은 없다. 우리의 삶은 모두 중요하다’며 소리치고 있다. 시대가 바라는 것은 혹시 이것이 아닐까. 그리고 역사학의 새로운 역할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역사학이 오랜 시간 만들어온 학문으로서의 기본 원칙을 지키면서도, 다양한 가능성, 방법론에 문호를 연다면, 대결해서 누군가를(그것이 역사적 대상이든 현재의 이웃이든) 이겨야 한다는 의무감을 털어낼 수 있다면, 그리고 학문의 친절함을 퍼트린다면, 역사학은 새로운 생명력을 지닐 수 있지 않을까. 이번 대화를 통해 이러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김경태 Kim Kyongtae
대한민국 포항시 출신. 한국사 전공.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박사과정 중인 2010 년~2011 년 도쿄 대학 대학원 일본문화연구전공(일본사학) 외국인 연구생 자격으로 유학. 2014 년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 취득.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고려대학교 인문역 량강화사업단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전남대학교 역사교육과 부교수로 재직 중. 전쟁의 파괴적인 본 성과, 전쟁이 초래한 황무지에서도 끊임없이 자라나는 평화 사이에 존재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 다. 주요 저작 : 허세와 타협 -임진왜란을 둘러싼 삼국의 협상- (동북아역사재단, 2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