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RA Report in Korean

  • SGRA 리포트 No.95 기로에 선 한일관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SGRA 리포트 No.95(한국어 발췌)   제 19 회 한일아시아미래포럼 기로에 선 한일관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21년 11월 17일 발행   〈포럼의 취지〉 과거사, 경제, 안보문제가 연계된 복합방정식을 현명하게 풀어내지 못하면 한일관계가 파국을 면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된 지 오래다. 한일 상호의 피로감도 한계에 달했고, 한일관계의 복원력 저하, 한미일 삼각관계의 균열 조짐도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는 강제징용 및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정부는 일본과 함께 해법을 찾는다는 방침이지만 , 일본정부는 일본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해법을 한국이 먼저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좀처럼 접점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양국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고 , 한일관계 연구자들에게는 무엇이 가능한가? 본 포럼에서는 한일관계의 전문가를 한일 각각 4명씩 초청하여 이러한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한일의 기조보고를 토대로 토론 및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목차〉 제1부 강연과 코멘트 【강연1】 기로에 선 한일관계: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일본의 입장에서 오코노기 마사오(게이오대학 명예교수)   【코멘트1】 오코노기 선생님 강연을 듣고 심규선(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   【강연2】 기로에 선 한일관계: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국의 입장에서 이원덕(국민대학교 교수)   【코멘트2】 이원덕 선생님 강연을 듣고 이쥬인 아쓰시(일본경제연구센터 수석연구원)   제2부 자유토론 토론자 김지영(한양대학교 부교수) 니시노 준야(게이오대학 교수) 고하리 스스무(시즈오카현립대학 교수) 박영준(국방대학교 교수)   제 3부 질의응답 진행  김숭배(충남대학교 초빙교수)     후기를 대신하여 김웅희 (인하대학교 교수)   참가자 약력
  • 김경태 「제6회 국사들의 대화 레포트」

    이번 6회 국사들의 대화는 지난 1월에 이어 7개월 만에 개최되었다. 가까워진 거리는 쉽게 멀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더 자주 볼수록 사람들 사이의 친밀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번 대회에서는 모두가 익숙한 얼굴을 마주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이번에는 공통 주제 하나를 두고 한 명의 발표자가 문제제기를 하고 여러 사람들이 이에 대해 함께 토론하는 방식이 마련되었다. 주제는 모두가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 “사람의 이동”이었다. 이는 학술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논의가 뜨겁게 전개될 만한 주제였다.9월11일, 오전 9시부터 온라인 회의의 준비가 시작되었다. 원활한 회의의 진행을 위해 갖은 노력을 해주신 사무국과 통역가 여러분들게 이번에는 가장 먼저 감사 인사를 올리고 싶다. 9시 정각, 이엔민 선생의 개회인사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무라 가즈아키 선생은 6회째를 맞는 이 회의의 이력과 취지를 설명하였다. 토론 시간이 부족하여 매번 아쉬움이 남았던 경험을 통해 이번 대회는 토론에 중점을 두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다만 실험적인 시도가 잘 될 것인지 여러분에 달려있다며 다소 걱정을 하였다. 결과적으로 실험은 성공이었다.문제제기는 시오데 히로유키 선생이 담당했다. “사람의 이동에서 보는 근대 일본 : 국경, 국적, 민족”이라는 타이틀이었다. 역사 연구는 오랫동안 국가와 민족의 영향을 받았다. 그 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많았으나 주류가 되기는 어려웠다. 여러 시각을 포용하는 방법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오데 선생이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준 사례들은 그간 생각지 못한 점을 떠올리게 했다. 이동의 자유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이 사람의 이동을 규정하는가에 대해, 일본 제국시기 조선인과 오키나와인의 이동 사례를 소개했다. 또한 사람의 이동이 무엇을 가지고 오는가, 무엇을 만드는 가에 주안점을 두고 하와이에서의 중국, 일본 이민자 간의 관계를 소개했다. 요컨대 국가가 사람의 이동에 미치는 강한 영향력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는 발표였고, 중국 한국 연구자에게 국사 속에서 사람의 이동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문제제기이기도 했다. 생생한 사진을 통해 되살아난 사람들의 삶에서 하나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에 대해 한중일 각국에서 2명씩 지정토론자가 나섰다. 조원 선생은 몽골 제국 시기 경제적, 정치적 요인에 의한 이동을 소개했다. 사람들의 이동이 활발해지는 중, 제국 안에서 다른 문화권에서 온 이들 간의 경쟁도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들 이동이 이후 역사에 미친 영향을 지적했다. 장지아 선생 역시 중국사의 이동을 예시로 들었다. 전쟁이 초래한 이동과 더불어, 정부가 주도한 강제적 이동과 정부가 개입하지 않은 경제적 이동을 비교하여 살펴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여러 규제에도 자발적으로 이동을 계속하여 삶을 계속했던 모습을 보여주었다. 에노모토 와타루 선생은 고대와 중세 일본의 구체적 사례를 소개해주었는데, 고대 일본은 출입관리를 엄밀히 했던데 비해 중세는 국가 관리가 없었고, 이에 이동하려는 이가 직접 여권의 역할을 하는 문서를 준비했다는 것이었다.국가가 사람의 이동에 개입하려는 시도의 시간적 공간적 다양성을 엿볼 수 있었던 토론이었다. 한편으로 지금의 팬데믹 상황 속에서 바라보자면, 이동의 정지라는 것이 다른 한편으로 온라인에서 더 활발한 접촉을 이끌어낸 것 같은 느낌도 든다.한성민 선생은 근대 한국인의 이동 양상을 세가지로 나누었는데, 첫째, 반자발적(생계)인 이동, 둘째, 국가 정책적 이민, 셋째, 식민지화 이후 강제동원이었다. 아울러 약자에 대한 애정을 담은 트랜스내셔널 관점의 도입을 제안했고, 이주한 곳에서 살아야 한 디아스포라의 문제를 감안할 때, 이주자 집단 간의 경쟁은 특수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친팡 선생은 제임스 스콧의 《조미아》를 소개하면서, 중심과 변두리, 변두리와 경계 바깥의 균형,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간 이들에 대한 관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동에 대한 국가의 관리와 함께 그 이면의 모습도 함께 살펴봐야할 것이다. 선생은 자신의 필드연구를 간략히 소개하면서 팬데믹 이후 변화한, 혹은 변화하지 않은 경계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오쿠보 다케하루 선생은 사람의 이동을 또다른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근대화를 추진하던 나라에 고용된 외국인, 남양군도에 갔던 일본인의 원주민 인식의 사례였다. 사람들의 이동인 만큼, 여러 사례, 반대의 예를 살펴보는 것 매우 중요할 것이다. 주권국가에서 떨어져 나가는 난민은 어떻게 볼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임을 확인해주었다. 한편, 동아시아를 넘어 다른 지역에 대한 시각도 공유하자는 의견을 제기했다.이상의 지정토론을 통해, 다른 시대, 다른 지역에서 사람의 이동이 야기되는 정치, 경제적 이유를 살펴볼 수 있었다. 역사 속 국가의 관리 방식과 이유, 그럼에도 이를 넘어서려는 사람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며,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시야가 확장된 느낌이었다. 동일한 주제를 두고 자신의 전공 분야와 연관하여 짧고 간명하게 문제의식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상당한 효용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어진 세션은 지정토론자가 참여하는 자유토론 시간이었다. 남기정 선생이 사회를 맡아주었다. 여기에서는 이동의 자발과 비자발성의 구분이 논의의 중심에 있었다. 시오데 선생은 개인이 다양한 목적에서 이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이번 문제제기의 목적이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이동을 좌우하는 것 중에 하나가 국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국가와 개인은 일방적이 아닌 긴장관계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동과 이주를 구분할 것이냐의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었으며, 민족이란 네이션인가 에스닉 그룹인가, 에스닉 그룹 역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등의 논의가 이어졌다.3, 4세션은 패널리스트가 참여한 자유토론이었다. 보다 논의의 폭이 넓어졌다. 토론에 앞서 류지에 선생이 논점정리를 해주었는데, 무엇이 이동을 규정하는가, 이동은 무엇을 가지고 오는가, 각국의 국사교육이 이동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오늘날 사람의 이동을 역사적으로 바라볼 때의 의미였다. 덕분에 자유토론에 앞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다양한 세부 전공 분야를 가진 연구자들의 심혈을 기울인 질문과 논점 제기는 본 대화의 깊이를 더 깊게 만들었다. 사람의 이동을 생각할 때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영향을 미친 종교에 초점을 맞추면 어떨까. 잊혀진 이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며, 일반인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히라야마 노보루). 자발과 비자발은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中動態”라는 개념, 즉 자발적이지 않지만 환경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오카와 마코토). 사람의 이동을 기축으로 해서 글로벌 히스토리를 그린다는 것은 중요한 시도이다. 이번 테마를 통해 고대~근대 국가 사회라는 것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아사노 도요미). 이동한 이주민이 현지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 이주 2세대들의 아이덴티티 문제(남기현). 이동과 노동력의 밀접한 관계(사토 유키). 사람의 이동과 밀접하게 관련된 감염병이 현대 사회에서 자국민 보호와 모순을 이루는 장면에서 느낀 의아함(이치카와 도모오), 등이 기억에 남았다. 또한 본 세션의 사회자였던 정순일, 펑하오 선생은 전공 분야인 중국과 일본의 여권, 호적 사례를 자세히 소개해주어 시대상의 이해에 큰 도움을 주었다. 한국의 사례가 충분히 소개되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쉬웠으나 이는 한국사 전공자인 필자의 책임도 있을 것이다.이렇게 토론시간이 마무리되었다. 이어서 송쯔융, 미타니 히로시 선생의 총괄, 조광 선생의 폐회인사가 이어졌다. 모두 공통적으로 토론이 더 전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의가 충만하였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였다. 미타니 선생은 기성세대가 생각하지 못했던 연구를 하고 발표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밝은 동아시아의 미래를 느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만난 좋은 친구들과 함께 앞으로도 이 대화를 이끌어가 주기를 당부하였다.제6회 대화로 다양한 시대와 분류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모여서 공통된 주제를 이야기한다는 것의 대단함을 깨달았다. 문제제기는 논의의 폭을 넓혔고, 지적 자극은 새로운 의문을 이끌어냈다. 토론은 끝이 날 수가 없는 것이다. 9월 11일의 토론시간은 끝났으나, 결코 세 나라의 대화는 끝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국사들의 대화가 이어지는 한편으로, 각 연구자들이 자신이 속한 곳에서 “대화의 동료”들을 불러들여 “대화의 장”을 넓힐 수도 있을 것이다.당일 사진앙케트 결과■김경태 Kim Kyongtae대한민국 포항시 출신. 한국사 전공.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박사과정 중인 2010년~2011년 도쿄 대학 대학원 일본문화연구전공(일본사학) 외국인 연구생 자격으로 유학. 2014년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 취득.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고려대학교 인문역량강화사업단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전남대학교 역사교육과 조교수로 재직 중. 전쟁의 파괴적인 본성과, 전쟁이 초래한 황무지에서도 끊임없이 자라나는 평화 사이에 존재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일본어판 중국어판 
  • 김경태 「제5회 국사들의 대화 보고―전염병의 시대에 전염병의 역사를 돌아보다」

    2021년 1월 9일, “제5회 한국・일본・중국 간 국사들의 대화 가능성”이 개최되었다. 이번의 주제는 “19세기 동아시아에서의 전염병 유행과 사회적 대응”이었다. 2020년 1월, 필리핀 에서 열린 제4회 국사들의 대화가 마무리될 때까지만 해도, 아니 COVID-19가 발생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 위기가 이듬해 1월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 4회 당시 미타니 히로시 선생님이 19세기 동아시아의 전염병에 대한 주제를 언급한 것은 선견지명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이 시대에 걸맞는 논의 주제가 되었다. 이번 대화는 온라인(웨비나)으로 개최되었다. 기술의 발전은 이 위기 속에서도 서로 대화할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러나 이 편리함의 이면에는 이 새로운 방식을 모두가 원활히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한 실무진들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화에 앞서 수많은 리허설이 있었고, 당일에도 오전부터 준비가 개시되었다. 꼼꼼히 준비해준 사무국에 다시금 감사드린다. 이전 회의에는 여러 발표자와 토론자를 초청하여 2일 내지 3일 간 회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상 각 국 1명씩의 발표자와 토론자를 초청하여, 집중도와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었다. 한편, 시간에 따라 변화는 있었으나, 발표・토론・패널리스트가 50명, 일반참석 93명으로 총 142명이 참여하였다.  대화는 두 세션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무라 카즈아키 선생의 사회로 세 발표와 지정 토론이 이루어졌고, 두 번째 세션에서는 남기정 선생의 사회로 자유토론이 진행되었다. 모든 세션이 끝난 후에는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친목회도 진행되어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1세션은 이마니시 준코 상무이사의 환영인사로 시작되었고, 조광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의 개회인사가 이어졌다. 조광 위원장은 19세기적 팬데믹에 대한 문제의 연구는 21세기 오늘의 상황, 즉  Post-COVID에서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인터네셔널’의 문제해결에 하나의 전범을 마련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하였다. 국사들의 대화의 의의가 연속되기를 바란다고 하는 바람을 첨언하였다. 첫 번째 발표는 박한민(동북아역사재단)의 “개항기 조선의 콜레라 유행과 개항장 검역”이었다. 전형적 전염병인 콜레라는 조선 초기 개항지인 부산, 인천, 원산에서 검역 문제에 고민하게 하였다. 세 개항장은 각 국의 자국민 보호와 이해 관계가 상충하는 양상을 보였다. 조선 정부는 경험을 축적하여 1887년 조선 정부 검역 장정을 제정하였고, 1893년까지 이어졌다고 하였다. 이치카와 토모오(오키나와 국제대)의 두 번째 발표는 “19세기 후반 일본의 감염병 대책과 개항장”이었다. 발표자는 첫 번째 발표와 비슷한 주제 및 문제 의식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한 것에 놀라움을 표하면서, 서로 연구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했다. 여기서는 일본의 개항장인 요코하마, 나가사키, 고베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일본인 사회와 외국인 사회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에 주목했다. 일련의 갈등을 거쳐, 1890년대 이후 일본 정부의 감염병 대책 일원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하였다. 세 번째 발표는 위신종(남개대)의 “중국 위생 방역의 근대 변천과 성격”이었다. 앞선 두 발표와는 달리 중국에서 위생이 가지는 의미와 실태, 그리고 근대 이후 변화에 대해 거시적인 안목에서 살펴본 연구였다. 또한 현 사태와의 비교를 통해 국가와 지역, 개인의 역할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할 고민거리를 제시해주었다. 이어서 세 발표에 대한 지정 토론이 진행되었다. 지정토론자 역시 세 나라 사람으로 구성되었다. (김현선(명지대), 시오데 히로유키(교토대), 친팡(수도사범대학)) 지정토론에서는 토론 대상 발표를 ‘지정’하지 않고 전체 주제를 대상으로 한 토론을 부탁하였기에, 훨씬 폭넓은 논의가 가능하였다. 세 분 토론자는 전통적 위생 방역의 의미, 근대 이후 국가가 방역을 주도하게 되는 과정, 전염병이 가지고 온 구분의 무형화와 함께 위생과 방역을 어느 국가가 주도하는지를 둘러싼 경쟁도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편 식민지에서의 위생과 방역문제 및 국가 단위 아래, 국가와 저변을 잇는 공동체에 대한 관심도 필요할 것이라는 제언도 있었다. 두 번째 세션은 자유토론이었다. 자유토론에 앞서 류지에(와세다대)의 논점정리가 있었다. 세 발표의 내용과 함께, 사전에 제출된 패널리스트분들의 질문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된 문제에 대해서도 정리를 해주었다. 국경을 넘는 사람들을 통해 퍼져나가는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우선적인 방법은 국가의 국경 봉쇄이며 이는 주권의 문제일 것, 그러나 곧 정보의 공유와 국경을 넘어선 대응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게 된다는 것, 예방과 치료에는 국가-지역-개인 네트워크, 커뮤니티의 역할이 중요했을 것, 이에 내포된 공존성과 대립성을 어떻게 이해할 지에 대해 접근할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여러 패널리스트분들께서 코멘트와 질문을 해주었다. 직접 발언하는 외에 채팅 기능을 이용하여 질문해준 분도 있었다. 전염병은 예로부터 정치담당자에 대한 불신감을 불러일으키곤 했고, 따라서 근대 이후에도 전염병은 국민의 정치의식 및 그 변화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주권과 전염병 사이의 역학 관계, 각국의 민중의식 및 민족주의 고양과의 관계, 전염병 유행시 세 나라의 정보 공유와 공동 대응 양상 등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발표자의 꼼꼼한 답변이 있었고, 지정토론자와 패널리스트의 보완 코멘트가 이어져,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자유토론의 아쉬움을 남기면서 쏭쯔융 선생(남개대)의 총괄, 아카시 야스시 선생의 코멘트로 이어졌다. 두 분 모두 역사의 한페이지에 남길 만한 시의 적절한 주제의 “대화”였으며, 우리의 사회적 책임감, 발신해야 할 사회적 메시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었다는 것. 각 국이 보다 더 자유롭고 서로 배우는 입장에서 글로벌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므로, 서로의 시점을 비교하고 분석하는 것이 이 모임의 문제의식이라는 것이 미래적 지구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남겼다. 회의의 마지막은 미타니 히로시 선생(아토미학원여자대)의 폐회 인사였다. 팬데믹 사태로 인해 다시금 분단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는 것, 이 회의가 국가-민중-학자 사이의 협력관계를 열어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 국사들의 대화 취지는 국가간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있으며, 이번에는 온라인이라는 한계도 있었으나, 중요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역사학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는 데 오늘 회의가 출발점이 되었으면 기쁘겠다는 말씀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번역과 동시통역해주신 분들, 그리고 아쓰미 재단과 장학생들에게 감사 인사를 해주셨다. 또한 오늘 만난 분들이 개별적으로도 앞으로 계속 교류해주면 좋겠다는 당부를 하였다. 공식적인 회의는 이렇게 마무리되었으나, 비공식적인, 그래서 더 자유로운 “대화”가 친목회라는 형식을 빌려서 이어졌다. 필리핀의 4회 국사들의 대화에서 만났던 분들은 일년 만에 얼굴을 맞대며 그간의 안부를 전하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었다. 5회 대화에 처음으로 참여해주신 분들도 금세 서로 친해졌다. 가끔 딱딱하지 않은 공통 주제를 두고, 음료와 안주를 하나씩 준비해서 이렇게 온라인으로 만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분량의 한계로 인해 참여하신 분들이 말씀하신 내용을 충분히 소개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아쉬움은 추후 발간될 레포트에서 떨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당일 사진 앙케트 결과 일본어판 중국어판  ■김경태 Kim Kyongtae 대한민국 포항시 출신. 한국사 전공.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박사과정 중인 2010년~2011년 도쿄 대학 대학원 일본문화연구전공(일본사학) 외국인 연구생 자격으로 유학. 2014년 고려대학교 한국 사학과에서 박사학위 취득.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고려대학교 인문역량강화사업단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전남대학교 역사교육과 조교수로 재직 중. 전쟁의 파괴적인 본성과, 전쟁이 초래한 황무지에서도 끊임없이 자라나는 평화 사이에 존재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 SGRA 리포트 No.90 제4회 한국・일본・중국 간 국사들의 대화 가능성 ‘동아시아’의 탄생: 19 세기 국제질서의 전환

     SGRA 리포트 No.90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제63회 SGRA포럼 (기획안)  강연록제4회 「한국・일본・중국에서의 국사들의 대화 가능성」 원탁회의‘동아시아’의 탄생: 19 세기 국제질서의 전환2021년 2월 11일 발행  〈포럼의 취지〉19 세기 이전의 동아시아는 지역 내 각 나라의 관계가 비교적 밀접하지 않아, 각 나라가 개별적으로 외국과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나 서양 국가들이 글로벌화의 움직임을 북태평양까지 가지고 오자, 한 ・ 중 ・ 일은 정치 ・ 경제 ・ 통신, 모든 면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하였고,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를 하나의 지역으로 간주하는 상상력이 만들어졌다. 이번 회의에서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했던 국내질서의 변화를 주제로 대화를 시도하고자 한다.서양이 상업에 대한 강한 관심과 새로운 교통・통신・군사기술을 지니고 이 지역에 다시 나타났을 때, 조선・중국・일본은 서양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그리고 이 인식은 전통적인 지(知)의 체계와 어떻게 뒤얽혔던 것일까. 예를들어 일본에서는 양학(洋學)이 학교 교육의 주축으로 자리잡게 된 한편, 천황을 질서의 핵심에 두고, 가족 내에서는 유교적인 남성우위관이 일반화되었다. 이와 같은 서양에 대한 반발과 동경심의 구성형태는 나라별로 달랐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문화의 차이를 낳게 되었다.서양의 진출은 각국의 자기 방위를 재촉하였고, 결과적으로 각국을 “국민국가”로 변화시켰다. 속도의 차이는 있었으나, 모두 국경을 명확화하고 내부의 단결을 촉진하는 내셔널리즘을 만들어내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서양이 도입한 해운망은 사람들을 국경 밖으로 유인해내기도 하였다. 중국으로부터는 대량의 노동자가 동남아시아와 미대륙으로 향했고, 이전에는 전혀 없었던 일이나 일본에서도 이민자가 바다를 건너게 되었다. 조선의 경우 이민자는 적었으나, 외국 유학생이나 정치적 망명자가 출현하여, 이윽고 나라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내셔널리즘의 형성과 국경을 넘는 이민・유학・망명의교착은 이후 동아시아의 질서를 국제관계와 국내질서의 두 가지 면에서 큰 변화를 불러왔고, 20 세기의 대변동을 준비하게 되었다.이번 포럼에서는 이상과 같은 문제들을 거론하여, 3 개의 세션으로 나누어 각 국의 사정을 비교하고 토론할 것이며, 이를 통해 19 세기 동아시아 세계에서 일어난 대전환의 전체상을 파악하고자 한다. 〈목차〉제1세션 개회[사회: 류 지에(劉 傑, 와세다대학)]【개회 인사】 제 4 회 ‘한국·일본·중국 간 국사들의 대화 가능성’ 원탁회의 인사말 조 광(趙 珖, 국사편찬위원회)【환영 인사】 19세기의 필리핀―마닐라 갤리언 무역을 중심으로― 마끼또・F(필리핀대학 로스바뇨스교)【기조 강연】 ‘아시아’의 발명―19 세기 리전(region)의 생성― 미타니 히로시(三谷 博, 아토미학원여자대학)【코멘트】 기조 강연을 듣고 나서1 쏭 쯔융(宋 志勇, 남개대학)【코멘트】 기조 강연을 듣고 나서2 박 한민(朴 漢珉, 동국대학교) 제2세션 서양 인식[사회: 류 지에(劉 傑, 와세다대학)]【발표 논문1】 19세기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만국공법’의 수용―일본의 경우―  오쿠보 다케하루(大久保 健晴, 게이오의숙대학)【발표 논문2】 19세기 후반 동아시아 3국의 불평등조약체제 극복 가능성과 한계 ―1880년대 초반 조선의 문호개방정책을 중심으로― 한 승훈(韓 承勳, 고려대학교)【발표 논문3】 마등경영(魔灯鏡影) ―18~20세기 중국의 매직랜턴 상영과 제작, 그리고 전파― 쑨 칭(孫 青, 복단대학)【질의 응답】 제2세션 발표 논문에 대한 코멘트 및 토론  제3세션 전통에 대한 도전과 창조[사회: 무라 가즈아키(村 和明, 도쿄대학)]【발표 논문4】 18・19세기 女性天皇・女系天皇論 오카와 마코토(大川 真, 주오대학)【발표 논문5】 일본민법의 형성과 식민지 조선에서의 적용 ―제령 제7호 <조선민사령>을 중심으로― 남 기현(南 基玄, 성균관대학교)【발표 논문6】 전통과 제도 개혁―19세기 후반기 중국의 양무운동― 꾸어 웨이똥(郭 衛東, 북경대학)【질의 응답】 제3세션 발표 논문에 대한 코멘트 및 토론  제4세션 국경을 넘는 사람들의 이동[사회: 펑 하오(彭 浩, 오사카시립대학)]【발표 논문7】 동아시아 공공권의 탄생 ―19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영어신문・중국어신문・일본어신문― 시오데 히로유키(塩出 浩之, 교토대학)【발표 논문8】 金玉均의 일본 亡命에 대한 日本社會의 인식과 대응 한 성민(韓 成敏, 대전대학교)【발표 논문9】 근대 중국여성의 모빌리티 경험과 여성 ‘해방’ 프레임에 관한 재고 친 팡(秦 方, 수도사범대학)【질의 응답】 제4세션 발표 논문에 대한 코멘트 및 토론  제5세션 전체 토론[사회: 리 언민(李 恩民, 오비린대학)] 초대 토론자: 아오야마 하루토시(青山 治世, 아세아대학), 히라야마 노보루(平山 昇,규슈산업대학), 박 한민(朴 漢珉, 동국대학교), 쑨 웨이궈(孫 衛国, 남개대학) 제6세션 자유 토론[사회: 남 기정(南 基正, 서울대학교)] 총괄: 미타니 히로시(三谷 博, 아토미학원여자대학) 맺으며아카시 야스시(明石 康) / 김 경태(金 泰) / 오카와 마코토(大川 真) / 남 기정(南 基正) / 꾸어 웨이똥(郭 衛東) / 박 한민(朴 漢珉)  저자 약력  참가자 리스트
  • SGRA 리포트 No.86 제3회 「한국・일본・중국에서의 국사들의 대화 가능성」 원탁회의 <17세기 동아시아의 국제관계 ―전란에서 안정으로―>

     SGRA 리포트 No.86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제59회 SGRA포럼 (기획안)  강연록제3회 「한국・일본・중국에서의 국사들의 대화 가능성」 원탁회의<17세기 동아시아의 국제관계 ―전란에서 안정으로―>2019년 12월 19일 발행  〈포럼의 취지〉 동아시아에서 “역사화해”의 문제는 여전히 큰 과제로서 남아 있다. 강화조약이나 공동성명에 의해 국가 사이의 화해가 법적으로 성립했다고 할지라도, 국민 레벨의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진정한 국가 간의 사회는 요원하다. 역사가는 역사화해에 어떻게 공헌할 수 있을 것인가. 1600년을 전후로 한 한 세기는 동아시아가 세 번째로 대규모의 전란에 직면한 시대였다. 동아시아에는 중국시장이 세계로부터 끌어들이고 있던 은을 조선에서 제련 기술을 배운 일본이 대량으로 공급한다는 구조 속에서 긴밀한 경제관계가 만들어 졌다. 한편 경제번영은 지역권 내의 제 민족에게 정치적 패권을 차지하려는욕망을 불러일으켰다.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만주의 홍타이지에 의한 두 차례의 조선침략 및 만주족에의한 중국에서의 청나라 건국이 그것이다. 경제에서의 상호 의존성 심화와 각국의 패전쟁탈이 동시에 진행되며 만들어진 대규모의 전란, 그리고 그 이후의 장기안정은 현대 동아시아에 깊은 자성을 불러온다. 다만 이번 회의의 목적은 어떠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입장에 따라 다양한 역사가 존재한다는것을 확인한 위에 “대화”에 의해 상호 이해를 심화시켜 가는 것이 목적이다.  〈목차〉<세션1> [사회:이 엔민 李恩民 (오비린대학)]【기조강연】 17세기 동아시아사의 전개와 특성—한국사의 흐름을 17세기 세계사 속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조광 趙珖(국사편찬위원회)<세션2> [좌장:양 뱌오 楊彪民 (화동사범대학)]【발표논문1】 임진왜란을 바라보는 한국의 시각 / 최영창 崔永昌(국립진주박물관)【발표논문2】 기만인가 타협인가—임진왜란 시기의 외교교섭 / 정 지에시 鄭潔西(영파대학)【발표논문3】 ‘임진전쟁’의 강화 교섭 / 아라키 가즈노리 荒木和憲(국립역사민속박물관)<세션3> [좌장:이명미 李命美 (한국외국어대학교)]【발표논문4】 禮의 窓으로 다시 바라본 병자호란 / 허태구 許泰玖(가톨릭대학교)【발표논문5】 ‘호란’연구에서 주의할 점 / 스즈키 가이 鈴木開(도쿄대학)【발표논문6】 라마의 위상—17세기 티베트불교와 동아시아 정국 / 치 메이친 祁美琴(중국인민대학)<세션4> [좌장:무라 가즈아키 村和明 (도쿄대학)]【발표논문7】 일본의 근세화와 토지・상업・군사 / 마키하라 시게유키 牧原成征(도쿄대학)【발표논문8】 임진왜란〜병자호란기 唐糧의 성격에 대한 검토 / 최주희 崔妵姫(한국국학진흥원)【발표논문9】 청대 전기 중조관계와 ‘동아시아’의 질서 구조 / 자오 이펑 趙軼峰(동북사범대학)<세션5> [좌장:류 지에 劉傑 (와세다대학)]【자유토론】 초대토론자 : 시오데 히로유키 塩出浩之(교토대학),김보광 金甫桄(가천대학교) 외총괄/미타니 히로시 三谷博(아토미학원여자대학)<세션6> [좌장:류 지에 劉傑 (와세다대학)]【패널 토론】 화해를 위한 역사가공동연구네트워크의 검증논점정리/조광 趙珖(국사편찬위원회)총괄/미타니 히로시 三谷博(아토미학원여자대학)발표자[일본] 미타니 히로시 三谷博(아토미학원여자대학),아사노 도요미 浅野豊美(와세다대학)[한국] 조광 趙珖(국사편찬위원회), 박훈 朴薫(서울대학교)[중국・대만] 양 뱌오 楊彪(화동사범대학), 왕 웬룽 王文隆(대만정치대학)재일연구자 : 단 즈이소 段瑞聡(게이오의숙대학) 맺으며김경태 / 무라 가즈아키 村和明 / 쑨 쭌위에 孫軍悦 / 류 지에 劉傑 저자 약력 관계자 명단
  • SGRA 리포트 No.82 제2회「한국・중국・일본의 국사들의 대화 가능성」원탁회의 「몽고내습과 13 세기 몽고제국의 글로벌화」

     SGRA 리포트 No.82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SGRA 리포트 No.82 (cover)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제 57 차 SGRA 포럼 (개요) 강연록제2회 「한국・중국・일본의 국사들의 대화 가능성」원탁회의「몽고내습과 13 세기 몽고제국의 글로벌화」2018년 5월 10일 발행  〈포럼의 취지〉 동아시아에 있어서「역사 화해」의 문제는 여전히 큰 과제로 남아있다. 강화조약과 공동성명에 의해국가간의 화해가 법적으로 성립해도 국민 차원의 화해가 진전되지 않아 진정한 국가간의 화해는 어려운상황이다. 역사가는 역사 화해에 있어 어떠한 공헌이 가능한 지에 관해 생각해 본다. 아츠미국제교류재단은 2015 년 7 월에 제 49 회 SGRA(세키구치 글로벌연구회)포럼을 개최해 「동아시아의공공재」와 「동아시아 시민사회」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이러한 가운데 먼저 동아시아에 있어「지의공유공간」 또는 「지의 플랫폼」을 구축하고 여기에서 화해로 연결되는 지혜를 동아시아에 제공하는 것에대한 의의를 확인했다. 이 플랫폼에 「국사들의 대화」라는 코너를 설치하게 된 것은 2016 년 9 월 아시아미래회의를 계기로 개최된 제 1 차 「국사들의 대화」였다. 지금까지 3 개국 연구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형태의대화가 진행되어 왔지만 각국의 역사 인식을 좌우하는 「국사 연구자」들간의 대화는 아직 본격적으로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인식하에 먼저 동아시아에서 역사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에 관해 생각했다. 구체적으로는 미타니 히로시 선생님(도쿄대학 명예교수), 갈조광 선생님(복단대학 교수), 조광 선생님(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의 강연을 통해 3 개국이 각자의 「국사」 속에서 아시아의 사건을 어떻게 다루고있는지를 검토했다. 제 2 회 대화는 자국사와 타국사와의 관계를 보다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몽고내습과 13 세기몽고제국의 글로벌화」라는 테마를 설정했다. 13 세기 전반의 「몽고내습」을 각국의 「국사」 속에서 논할경우 일본에서는 일본문화의 독립이라는 시점이 강조된다. 또한 중국에서는 몽고(원조)를 「자국사」로간주하면서 몽고내습을 몽고와 일본과 고려라는 중국의 외부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다룬다. 하지만 동아시아전체의 시야에서 보면 몽원의 고려·일본 침략은 문화적으로 각국의 자아의식을 환기시키고 정치적으로는 중국중심의 화이질서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국사」와 동아시아 국제관계사의 접점에는 지금까지의식하지 않았던 새로운 역사상의 존재 가능성이 기대된다. 물론 본회의의 목적은 입장에 따라 다양한 역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대화」에 의해 어떠한합의를 도출하려는 것은 아니다. 〈목차〉개회세션 [사회: 리 엔민(李恩民, 오비린대학)][기조강연] ‘포스트몽골 시대’? -14~15세기 동아시아사를 재검토한다 거 자오광(葛兆光, 복단대학) 제1세션 [좌장: 무라 카즈아키(村和明, 미쓰이 문고) 펑 하오(彭浩, 오사카시립대학)][발표논문1] 몽골 임팩트의 일환으로서의 ‘몽골의 침입’ 욧카이치 야스히로(四日市康博, 쇼와여자대학)[발표논문2] 아미르 아르군과 그가 후라산 등지에서 진행한 두 차례 호구조사 초크트(朝克图, 내몽골대학)[발표논문3] 몽골습래회사(蒙古襲来絵詞)를 해석한다두가지 발문(奥書)의 검토를 중심으로 하시모토 유(橋本雄, 홋카이도대학) 제2세션 [좌장: 서 정파(徐静波, 복단대학)], 나히야(娜荷芽, 내몽골대학)][발표논문4] 몽골제국 시대 몽골인의 명명(命名)습관에 관한 고찰 에르둔바토르(额尔敦巴特尔, 내몽골대학)[발표논문5] 몽골제국과 화약병기-메이지와 현대의 ‘원구(元寇)’ 이미지 무카이 마사키(向正樹, 도시샤대학)[발표논문6] 조선왕조가 편찬한 『고려사』에 수록된 원의 일본 침공에 관한 서술 쑨 웨이궈(孫衛国, 남개대학) 제3세션 [좌장: 한 승훈(韓承勲, 고려대학교), 김 경태(金冏泰, 고려대학교)][발표논문7] 일본 원정을 둘러싼 고려 충렬왕의 정치적 의도 김 보광(金甫桄, 가천대학교)[발표논문8] 대몽전쟁・강화의 과정과 고려의 정권을 둘러싼 환경 변화 이 명미(李命美, 서울대학교)[발표논문9] 북원(北元)과 고려의 관계에 관한 고찰-우왕(禑王) 시대의 관계를 중심으로 체렝도르지(其林道尔吉, 몽골과학원 역사연구소) 제4세션 [좌장: 김 범수(金範洙, 동경학예대학), 리 엔민(李恩民, 오비린대학)][발표논문10] 몽골 제국 음식문화의 고려 유입과 변화 조 원(趙阮, 한양대학교)[발표논문11] ‘심첨호모(深簷胡帽)’ 연구-몽원(蒙元)시대를 풍미한 여진족 모자의 변천사 장 지아(張佳, 복단 대학) 전체토의 사회 / 정리: 류지에(劉傑, 와세다대학), 논점정리: 조 광(趙珖, 한국국사편찬위원회)총괄: 미타니 히로시(三谷博, 아토미학원여자대학) 후기를 대신하며김 경태(金冏泰), 미타니 히로시(三谷博), 쑨 웨이궈(孫軍悦), 나히야(娜荷芽), 펑 하오(彭浩) 저자약력  참가자 리스트 
  • SGRA 리포트 No.79 한・중・일 「국사들의 대화」의 가능성

     SGRA 리포트 No.79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SGRA 리포트 No.79 (cover)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제52회 SGRA 포럼 강연록제 3 회 아시아미래회의 일본연구원탁회의한・중・일 「국사들의 대화」의 가능성 2017년 8월 7일 발행  〈포럼의 취지〉 아츠미 국제교류재단은 과거 차례의 아시아 미래회의에서 원탁회의를 개최하여 일본연구가 지향할 모습에 대해 검토했다. 2015년 7월에 도쿄에서 개최된 포럼 「일본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며」에서는 공공재로서의 일본연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동아시아의 장기적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것은 신뢰에 기초한 협력관계이다. 1930년대, 일본과 중국이 전면전쟁에 이르렀던 프로세스가 말하고 있듯이, 경제・무역관계만으로 평화 확립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년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이 지역의 신뢰양성에 불가피한 「화해」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전후 동아시아에서는 부분적인 화해는 달성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화해는 정부끼리의 「전략적」판단과 민간의 「우호적」운동에 의해 뒷받침되었던 것으로, 지속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현재, 이 지역에서 요구되는 것은 공유하는 「지(知)」에 기초한 화해이다. 일본연구를 이와 같은 「공유지(公共知)」로 육성하는 작업은 무시할 수 없는 의미를 가진다. 근대 일본은 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복잡한 관계를 맺었다. 일본이 경험한 성공과 실패를 아시아 전체가 공유하는 재산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역사를 극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같은 인식에 기반하여 아츠미 국제교류재단은 2년간 연속하여 「일본연구」를 테마로 삼아 논의를 심화하였다. 다음 단계에서는 「중국연구」와 「한국연구」도 「일본연구」와 같이 동아시아의 「공유지(公共知)」로 만들어내는 일에 대한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세 나라가 지(知)의 공유공간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선 역사인식의 차이를 넘어서야만 한다. 지금까지 세 나라의 연구자 사이에서는 여러 대화가 이루어졌지만, 각 국의 역사인식을 좌우하는 「국사연구자」끼리의 대화는 아직 깊은 수준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국사들」의 대화를 통해, 공유하는 「일본연구」 「중국연구」및 「한국연구」를 향한 길이 열리고, 일본의 「아시아연구」에 「일본연구」를 받아들이는 환경을 정비하는 일로도 이어질 것이다. 그러한 연구환경의 정비와 연구성과의 발신은 동아시아의 화해 실현에 큰 공헌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  〈목차〉<제1부>문제제기 왜 ‘국사들의 대화’가 필요한가 ─‘국사’와 ‘역사’의 사이류 지에 (劉傑, 와세다대학교 사회과학총합학술원 교수)한·중·일 세 나라가 지의 공유공간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선 역사인식의 차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 세 나라의 연구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대화가 진행되어왔으나, 각국의 역사 인식을 좌우할 ‘국사 연구자’ 간의 대화는 아직심화되지 못하고 있다. ‘국사들’을 대화하게 함으로써, 공유 가능한 ‘일본 연구’, ‘중국 연구’ 및 ‘한국 연구’의 길이 열린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환경의 정비와 연구성과의 발신은 동아시아 화해의 실현에 크게 기여할 것임에 틀림없다.【발표 1】한국의 국사(연구/교과서)의 동아시아 서술조광(趙珖,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한국, 일본,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역사를 둘러싼 논쟁은 이전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있다. 이와 함께 각국에서는 역사교육에 관한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우리는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다시금 직시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시아의 역사 문제는 자민족중심주의와 국가주의적인 경향에 유래한다. 한국도 여기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근래 편찬되어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 그리고 학계의 일본관계사, 중국관계사의 서술을 바탕으로 이러한 경향을 살펴보기로 한다.【발표 2】중국 국사(연구/교과서)의 동아시아 서술 ─13세기 이후 동아시아의 세 가지 역사적 사건을 사례로거 자오광(葛兆光, 푸단대학교[復旦大学] 교수) 본고는 13─16세기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세 가지 역사적 사건, 즉 ‘몽고 침략’ (1274·1281), ‘쓰시마 정벌’(1419), ‘임진왜란· 정유재란’(1592·1597)을 사례로 들어 개별 국가의 역사와 동아시아사의 차이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다. 역사를 서술할 경우, 여러 개의 중심이 있으면 몇 개의 역사권이 나타나고 그 역사권이 교차하는 지점에는 국가사와는 다른 부분도 꽤 나온다. 일국의 역사를 서술할 때 그러한 부분은 종종 간과되지만, 동아시아사를 서술할 경우 이 역사권이 겹치는 부분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발표 3】일본 국사(연구/교과서)의 동아시아 서술미타니 히로시(三谷博, 아토미학원[跡見学園]여자대학교 교수/도쿄대학교 명예교수) 일본의 역사연구와 역사교육은 모두 일본사와 세계사로 양분되어 있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일본인의 세계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일본과 아시아를 포함한 세계를 별개로 간주하고, ‘일본은 세계(아시아)의 외부에 있다’는 세계관이다. 필자는 글로벌화가 진행되고 있는 세상에 이러한 세계관을 유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최근 일본학술회의 역사학위원회에서 고등학교 역사교육에서 일본사와 세계사를 융합한 ‘역사기초’라는 과목을 신설할 것을 주창해왔다. 현재문부과학성은 이러한 제언을 참고로 차기 학습지도요령에서 이와 유사한 틀의 ‘역사종합’이라는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발표에서는 현재의 일본사 교육이 일본 외부(外界), 특히 동아시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 주요 교과서를 소재로 삼아 분석하고 그 내용을 확인한 후, 미래의 일본사 연구 및 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제2부>토론【토론 1】국민국가와 근대 동아시아 / 야오 케이스케(八百啓介, 기타큐슈시립대학교[北九州市立大学] 교수)【토론 2】역사 인식과 개별 실증의 관계 ─‘번국접소도’(蕃国接詔図)를 사례로─ / 하시모토 유(橋本 雄, 홋카이도대학교[北海道大学] 준교수)【토론 3】중국 교과서에 서술된 일본─‘혁명사관’ 교육에서 ‘문명사관’ 교육으로의 전환─ / 마쓰다 마미코(松田麻美子, 와세다대학교)【토론 4】동아시아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하여 / 쉬 징보(徐静波, 푸단대학교[復旦大学] 교수)【토론 5】‘국사들의 대화’ 진전을 위한 제언 / 정순일(鄭淳一, 고려대학교 교수)【토론 6】국사에서 용어 통일과 목표 설정 문제 / 김경태(金 泰,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원탁회의·토론사회 : 남기정(南基正, 서울대학교 부교수)토론 : 발표자 및 토론자 전원, 기타 참가자폐회사 : 리 엔민(李恩民, 오비린대학교 [桜美林大学] 교수) 후기 발표자 및 토론자 약력